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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행). 인간의 본성과 수송 탄소중립 대안 - 이규진 위원

작성일 : 2024.09.02 조회 : 817

인류 역사는 교통 변화와 함께 진행되어 왔다. 일찍이 로마는 촘촘한 도로망 구축을 통해 제국을 운영할 수 있었다. 몽골제국 역시 비단길 개척으로 황금기를 누렸고, 영국은 대항해로를 구축함으로써 대영제국의 기초를 놓았다. 역사상 출몰했던 세계 제일의 강대국은 당대의 교통을 지배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로도 역사는 산업혁명과 함께 철도와 선박이 발달하며 비기계식 운송 수단을 활용한 농업 중심 사회를 탈피해나갔고,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 등 오늘날의 근대적 교통체계를 완성했다. 이른바 ‘포드 시대’라 불리는 현대에 이르면, 내연기관 개발에 따른 차량의 대량 생산 및 도시 팽창이 이루어졌고, 이후 항공을 활용한 글로벌 교통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이상의 교통 변화에 따른 시대 변화를 돌이켜 보면, 오늘날 수송 효율 개선 및 대량 운송이 가능하게 된 분기점은 화석연료의 사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수송 효율 개선 및 대량 운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무역 증가를 통한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다. 반면, 이와 같은 성장 중심의 교통 활동은 연간 약 1억만 톤의 수송 온실가스 배출을 유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결국 수송 효율성과 대량화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수송 효율화를 추구하는 가운데에도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인류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경제 성장을 가볍게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흔히 온실가스 감축의 모범으로 거론되는 유럽연합의 사례가 정답이 될 수 없는 것도 그래서이다. 유럽연합은 내연차 중심 문화를 탈피하여 승용차보다는 보행, 자전거 등 비동력 무탄소 교통수단이 일상화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유럽의 선례를 곧바로 따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은 세계 무역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등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이룬 지역이다. 행복지수 또한 세계 146개국 중 59위인 우리나라와 달리 1위인 핀란드를 비롯해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즉, 유럽의 경우 이미 비동력 무탄소 교통수단을 통한 도시화, 친환경 연료 기반 철도 및 항공 등 대량 수송 수단을 활용한 경제 성장에 의한 삶의 질 향상,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실정이기에 유럽의 사례를 일률적으로 다른 나라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운 친환경 교통체계의 추진 방향은 어떻게 접근하여야 할까?

중국 고전 문헌에서는 인간 생활의 필수적 4개 요소를 의식주행(衣食住行)으로 정의하고 있다. 교통은 우리의 일상생활인 의식주 활동을 위한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 본성에 따른 삶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이 칼럼을 통해 나는 ‘이동 욕구에 따른 활동 영역 확장’이라는 인간의 본성 및 역사 발전에 대한 이해에서 우리의 수송 탄소중립 대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동성에 대한 인간의 4대 본능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 발전 및 지속가능 도시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보다 수용성 높은 수송 탄소중립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동성에 대한 인간의 4대 본능’이란 Busubel & Marchetti(2001)에서 정의된 ‘최대 허용 통행시간 본능(Travel time budget)’, ‘복귀 본능(Return to the lair in the evening)’, ‘최대 허용 통행비용 본능(Travel money budget)’, ‘영역 구축 본능(Territorial animal)’을 얘기하는 것이다.

[최대 허용 통행시간 본능과 수송 탄소중립]
교통이란 사람의 통행이나 상품 운반에 필요한 물리적 거리가 가져다주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역사적으로 도시 발달 및 사람들의 공간적 활동 범위 등을 결정해온 주요 요인이었다. 이와 관련, 과거에는 일일 생활권만으로도 통행시간이 충분히 짧다고 느꼈지만, 최근에는 1시간 생활권, 더 나아가 15분 생활권까지 추구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최대 허용 통행시간 본능’에 따라 생활권을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허용 시간이 지속적으로 단축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후에는 자동차라는 교통수단만으로는 우리가 추구하는 최대 통행시간 본능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직주근접의 도시체계를 개발하고, 재택근무 및 스마트 근무가 장려되는 사회 구조로의 변환이 필요하다. 도시구조가 변해야 비로소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보행·자전거 등 비동력 무탄소 교통수단을 통한 경제활동 행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복귀 본능과 수송 탄소중립]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성장한 후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시 자신의 고향인 강으로 물살을 거슬러 되돌아온다. 연어의 회귀본능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인간 또한 비슷한 유전자를 지녀서인지 어릴 적 고향과 할머니 집에 대한 그리움을 품게 되는 것 같다. 도시에서의 치열한 사회생활 끝에 노후에 이르면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사례들이 그런 인간의 복귀 본능을 잘 보여준다.
이런 인간의 복귀 본능을 수송 통행에 적용해보자. 인간은 최소 하루 2회의 통행을 하게 된다. 출근 통행이 있으면 퇴근 통행이 있고, 만남을 위한 통행이 있으면 귀가를 위한 통행이 있다. 개인 교통의 확대를 지양하고 공공교통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택시의 예를 들어보면, 개인 탑승인 경우보다 합승인 경우가 온실가스 감축에 유리하다. 2명 통행자 기준, 개인 탑승인 경우 하루 4번 택시가 운행되어야 하지만, 합승일 경우 하루 2번만 운행해도 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원리로 버스나 도시철도 같은 공공교통 수단을 이용할 경우 온실가스를 더욱 줄일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복귀 본능을 적절히 고려한다면 경제활동을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도 불필요한 수송 온실가스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최대 허용 통행비용 본능과 수송 탄소중립]
통행비용은 교통에 수반되는 화폐 비용과 통행시간 등 각종 유무형의 비용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는 통행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고려하여 교통수단을 선택한다. 차량 구매 시 구매비용 외 유지비용까지 고려한 총 비용을 계산해 차량을 선택하는 게 그 예이다.
최대 허용 통행비용 본능과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사례가 있다. 소위 ‘로드 다이어트’라 불리는 도로 축소 정책으로 최근 개인 승용차의 교통비용이 증가되며 출현한 현상이다. 로드 다이어트로 인해 최대 허용 통행비용이 초과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고, 이에 통행자들은 상대적으로 교통비용이 낮아진 보행이나 자전거 등으로 교통수단을 전환하는 것이다.
버스전용차로 역시 마찬가지로 최대 허용 통행비용 본능이 고려된 시스템이다. 버스의 교통비용을 낮추고 개인 승용차 교통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개인의 교통수단 선택 행위에 변화를 유도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전기·수소차에 구매보조금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 역시 전기·수소차 선택에 따른 최대 허용 통행비용을 만족시키기 위한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영역 구축 본능과 수송 탄소중립]
수송 온실가스 감축의 해답은 무조건적인 통행 억제에 있지 않다. 비효율적인 교통 에너지 사용을 선별적으로 억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은 모름지기 영역 구축 본능에 따라 생활권을 넓히면서 도시를 성장시켜왔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역 구축 본능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수송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사례로는 KTX와 GTX(Great Train Express)가 있다. 이들 급행철도는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 도심의 주요 거점을 연결하는 노선인데, 과거에는 지상 철도를 통한 접근성 향상을 추구했으나 최근에는 도시 분절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여 지하철도를 확장하고 있다. 물론 지하 또한 공간의 제약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최근에는 지하 50m 아래를 최대 시속 180km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인간의 영역 구축 본능이 지속된다면 앞으로는 미래 교통수단인 하이퍼루프를 볼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하이퍼루프는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 모터스 및 민간 우주업체 스페이스X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고안한 차세대 이동수단이다. 진공 튜브에서 차량을 이동시키는 형태의 운송 수단이며, 최고 속도가 시속 1,280km여서 서울-부산을 15분에 주파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보행 15분 시대에는 5km 내외의 도시가 하나의 생활권이었다면 하이퍼루프와 같은 친환경 교통체계의 확산은 전국 15분 생활권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자동차에 의한 도시 분화 및 탄소 배출 문제는 곧 교통 발달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수송 탄소 배출은 유무형의 생산을 위한 인간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 활동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교통수단 및 교통체계는 탄소중립 대전환의 시대에 발맞춰 지속 가능한 미래사회 및 도시 성장을 위한 방향으로 대전환되어야 한다. 특히 인간 본성인 이동 욕구와 활동 영역 확장을 전제한 친환경 교통체계 구축을 통해 사회적 수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탄소 배출·감축의 최종 주체 및 행위는 실상 교통수단을 선택하는 인간의 본성에 따른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수송 탄소중립의 전략적·철학적 전략 설계는 인간의 욕구 충족에서 발현된 세계 각국의 저탄소 무역경쟁 시대의 요구에 대한 대응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이나 금모으기 운동 등 온 국민이 합심하여 국란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도 우리들에게 내재된 본성이기도 한 단합된 국민성으로 세대, 지역, 계층 간 갈등을 넘어 획기적인 물꼬를 트는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시절 경제 위기를 극복하였듯, 경제사회적 가치를 탄소중립으로 대전환함으로써 비단 기후위기 대응 방법 논의 차원을 넘어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으로 세계를 선도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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