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시간: 내촌목공소 남희조 허회태> 전시 관람을 위해 지난 9월 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본 전시는 미술관 최초로 목공소와 예술가 간 협업을 시도하여, 단순한 예술적 성취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경험하게 하고 조화를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힘과 깊이가 있는 가구를 만드는 내촌목공소와 동서양 문화를 융합해 작업하는 남희조 작가, 서예와 현대미술의 접목을 통해 ‘이모그래피(Emography)’라는 예술 장르를 창시한 허회태 작가 간 만남을 통해 ‘그린 무브먼트(Green movement)’와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 예술에 대해 고민해 보게 합니다.
전시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인간과 나무의 관계에 대해 짚어 보며 시작됩니다. 나무를 떠나 생존할 수 없었던 과거에 반해 오늘날 건축 작업에서는 철근 콘크리트가 주요 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불과 오십 년에서 백 년 사이에 나무가 인간의 삶에서 멀어진 지금, 내촌목공소는 현대 ‘목조’ 건축의 선두에 서서 작업에 가장 적절한 나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최근에는 강원도산 활엽수를 사용하여 지역성과 탄소중립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전경 (사진=김호정 기자)
다음 섹션에 들어서면 시원한 대나무 숲길이 펼쳐집니다. 올해 6월 완성된 작품으로 남희조 작가의 고향인 담양과도 연결되는 창작물입니다. 자연과 계절의 변화와 함께 성장한 남 작가는 자연을 스승이자 정직한 친구, 때로는 안식처로 묘사합니다. 그리운 유년 시절의 추억과 일상 속 자연을 품고자 해당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맞은편에 있는 작품 ‘Empty and Fullness’와 의미가 이어집니다. 전부 타버리고 생명을 다한 대나무가 또다시 초록색 대나무 숲의 거름이 되어주어 죽순을 키워내고 생명의 숲을 이룬다는 순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삶의 고난과 희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과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고 밝혔습니다.
남희조, Wind in the Bamboo Forest2, 2024, Mixed Media on Steel Plates, 440×160cm (사진=김호정 기자)
남희조, Empty and Fullness, 2024, Hemp, Burnt Bamboo, 293×68cm (사진=김호정 기자)
섹션 제목에 사용된 ‘꾸븐 낭개’는 태운 나무를 뜻합니다. 내촌목공소에서는 직접 벌채한 강원도산 참나무를 숯이 되기 직전까지 태워 사용하는데, 무겁고 견고하며 물에 잘 썩지 않는 내구성을 지니고 검은색의 광택이 도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편 원목은 실내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여 관리와 유지가 까다롭고 뒤틀림 및 터짐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자재입니다. 그럼에도 내촌목공소에서 원목을 고집하는 이유는 유해 연기를 가장 적게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내촌목공소는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 제로’를 건축, 가구, 키친 등 어느 한 작업에서도 빼놓지 않고 지키고 있습니다. 내촌목공소의 나무쟁이 김민식은 디자인적 요소를 최대한 덜고 목재 원형을 그대로 살리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내촌목공소, Pagoda, 2019, 29×39×190cm (사진=김호정 기자)
내촌목공소와 남희조 작가의 작품들을 둘러보고 나면 마지막 섹션에서 허회태 작가의 작품을 마주치게 됩니다. 40년 넘게 서예를 수련한 허 작가의 여러 붓글씨 작품부터 한지를 활용해 제작한 작품들까지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래 작품은 한지를 사용해 수많은 스티로폼 조각을 하나씩 감싸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군집을 형성하여 부착한 수공예 창작물입니다. 인간이 배출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중 가장 많은 양이 스티로폼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환경 정화에 일조하고자 작업의 주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허회태, 내가 찾은 꽃길 4, 2022, 한지 및 혼합재료, 161×130cm (사진=김호정 기자)
전시 내 다양한 작품들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그 속에서 인간이 갖는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나아가 오늘날 나무와 숲이 지구 환경에 기여하는 바를 새삼 느끼게 하며 산림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오늘날 100년 이상 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나무가 흔히 고평가되곤 하지만, 사실 나무의 전성기는 40년에서 60년 사이입니다. 몇백 년 된 나무들이 숲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것보다 40년에서 60년 된 나무가 생장기 최대치의 산소량을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주는 것이 지구 건강에 보다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벌채와 벌목을 진행하는 이유 역시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는 탄소 흡수율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핀란드, 일본, 스웨덴과 함께 세계 4대 산림 국가에 속해 있는 대한민국은,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국토 면적 대비 산림 비율이 63.7%입니다. 한편 이는 전부 국가의 소유로 민간이 함부로 베거나 활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따라서 나무 소비에 대한 국가적 제도 개선을 통해 오래된 나무를 사회에 활용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 것이 산림 탄소흡수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넷제로프렌즈 청년기자 김호정
원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kmhzng/223602405862
본 글은 넷제로프렌즈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탄녹위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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