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사회‧경제 체제로의 변화는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통한 기후위기 극복의 차원을 넘어 역사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크게 변화하는 거대한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 영향을 받을 모든 이해관계자를 포용하는 의미인 공정전환에 대한 관심, 노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공정전환에 대한 관심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이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정전환의 의미와 이에 관한 논의 및 진전
새로운 기술과 생산 방법을 통해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꾼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은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증기 기술의 도입과 기계화로 대변되는 1차 산업혁명은 공장에서의 기계화된 생산 방식을 촉진하며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공장에서의 노동 수요는 늘어나게 되었으나, 기존의 노동 - 가령, 수작업을 통한 일자리에 대한 - 수요는 감소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행동인 에너지 전환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삶의 방식, 일자리 수요 등에 대한 상당한 영향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공정 전환(just transition)에 대한 기원은 1980년대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 폐기된 유해물질로 인해 토양이 오염되고 이로 인해 주민과 지역사회에 피해를 준 환경오염 사고인 「러브 캐널 사건」을 계기로 하여 1980년에 슈퍼펀드법이 제정되었다. 이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금을 보유하고 오염된 시설, 토지에 대해 정화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며, 화학물질 사용 등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이다. 1993년 미국의 석유‧화학‧원자력‧노조를 통해 동 조치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산업의 노동자들에 대한 훈련, 일자리 유지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이후 1995년 슈퍼펀드/공정전환이라는 제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국제사회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최근의 논의를 살펴보면 공정 전환이 기후변화대응에 관한 논의들과 연결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으며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노력을 선언한 당사국 총회(COP21)에서 공정 전환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 내용이 다루어졌다. 이후 2018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개최된 당사국 총회(COP24)에서 공정전환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강조되었으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s)를 마련함에 있어 이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하는 권고가 이루어졌다.
공정전환에 대한 의미는 이를 정의하는 주체별로 다소 차이를 보이나 핵심은 기존의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사회 체계에서 탄소중립 체계로 나아감에 있어 이에 영향을 받는 산업, 지역, 세대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포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제기구 차원에서 제시하는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UN에서는 공정전환을 저탄소와 환경적으로 친화적인 지속가능한 경제, 사회로의 전환에 있어 누구도 소외되거나 강제되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기후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달성하도록 하는 동력을 제공한다고 본다. 특히, 역사적 책임을 이해하는 것이 공정전환의 핵심이며, 공통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책임에 대한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사하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고탄소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있어 누구도(노동자, 장소, 영역, 국가, 지역 등) 소외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원칙, 절차 및 실행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경우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정하고 포용적인 방법을 통해 경제를 녹색화(greening)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공정전환은 기후행동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기회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관계자 그룹과의 효과적인 사회적 대화 등을 통해 직면하는 문제들을 최소화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공정전환에 대한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일련의 절차나 프레임워크를 확립하려는 노력 또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공정전환 메커니즘(just transition mechanism)을 통해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녹색경제로의 전환에 있어 가장 영향을 받는 지역과 분야에 집중하여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요하게 재정 지원, 기술 지원 등을 제공한다. 재정 지원의 경우 공정전환기금(just transition fund) 등 방식으로 마련하며, 최소 €1,000억 규모를 조성할 것으로 발표하였다. 특히 이는 화석연료 분야에 종사하는 지역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루어진다.
공정전환에 관한 해외 사례
(1) 독일 루르(Ruhr) 지역의 산업 전환
먼저 독일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사용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자국의 에너지믹스를 다양화하고 석탄 사용에 대한 종식을 위해 공식적으로 2018년 12월에 무연탄(hard coal) 생산을 중단하였다. 이는 국제적 차원에서 선도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사항이다. 이 조치로 인해 무연탄과 관련 산업이 주요한 기반인 독일 중서부의 루르 지역은 구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석탄 생산과 철강 기반 산업에서 지식기반 경제로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루르는 대표적인 중공업 지역이며, 광업과 제철업을 중심으로 독일의 산업화를 주도한 곳이다. 다만 1950년대 이후 대체 에너지 사용이 증가하면서 지역의 핵심 산업이 영향을 받았으며, 실업 문제 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기존 산업의 보존(1960~70년대)과 함께 구조 다변화(1970년대 이후) 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이루어졌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미래 산업, 시장을 촉진할 수 있는 분야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러한 재구조화 과정에서 사회적 파트너십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NESC, 2020).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석탄 발전에 대한 사용 중지와 경제구조 다변화 과정에 있어 근로자, 고용주가 동등한 입장에서 이러한 정책 결정에 함께 참여한 것이다. 또한 인프라, 고등교육 및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공공부문에서 많은 지원이 이루어진 것도 특징이다. 대학과 기술교육기관을 설치하기 위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정책적 결정에 있어 중요하게 다루어진 사항은 양질의 대체적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충분하게 숙련된 노동자들을 창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EU, 주정부 그리고 민간 지원을 포함하여 지원금 방식으로 1970년부터 2016년까지 3,370억 유로에 해당하는 지원금이 제공되었다.
(2)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에너지 전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자국 내 전력 생산의 70% 이상을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2021년 기준). 한 분석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공 전력회사 Eskom의 석탄 발전소로부터 발생하는 대기 오염으로 인해 매년 약 2,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노후화된 석탄발전소에 대한 유지, 기술적 이슈, 관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전환의 대안으로 삼고 있다. 다만 이러한 에너지 전환으로 인해 이에 의존하고 있는 이해관계자의 생활, 근로 등에 큰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전환에 있어 적극적인 노력이 이루어졌다. 에너지 전환을 꾀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적인 혜택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진 것이다. ‘Sere Wind Farm’ 프로젝트는 100MW 규모의 육상 풍력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로 실시되었으며, 2015년 3월부터 발전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주요 에너지원인 석탄 발전으로부터 탈피하고 대규모 재생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경제에 많은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특히,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전환으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요소를 고려하기 위해 논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였다. 지역의 일자리 기회, 청년을 위한 기회, 비즈니스, 지역 기반 시설, 사회적 서비스 등이 고려되었으며, 관련한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또한 풍력 시설을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한 기술과 지식들에 대한 교육도 제공되었다.
(3) 유럽연합(EU)의 공정전환 계획과 청년세대 참여
유럽연합(EU)는 화석연료에 대한 생산과 소비에 의존하는 지역의 탈탄소화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역 발전 프로그램 차원에서 공정전환 메커니즘(JTM : Just Transition Mechanism)을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새로운 저탄소 경제 활동을 창출하고 화석연료 분야에 고용되어 있는 근로자들의 재교육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동 메커니즘을 실행하기 위해 유럽연합 회원국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지역에 대한 ‘지역 차원의 공정전환 계획’(TJTPs : Territorial Just Transition Plans)을 마련하였다. 2021년 마련된 이 계획은 화석연료에 대한 사용을 중지하고 새로운 녹색경제 활동을 창출하는 내용으로 주정부 차원에서 지자체, 비즈니스, 시민사회의 참여와 지원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특히, 16세~29세의 청년들이 이러한 계획을 마련하는 것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EU 위원회는 2021년 “공정전환을 위한 청년, 청년이 참여하는 툴킷”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2022년에 유럽위원회는 공식적으로 ‘EUTeens4Green’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공정전환 지역의 15세~24세에 대한 지원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청년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청년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하며, 청년들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정책적 논의와 프로젝트 실행에 있어 실제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관련한 사례로 체코의 경우 아동, 청년을 위한 체코 위원회의 전환 플랫폼을 통해 청년이 참여한다. 또한, 에스토니아는 공정전환 계획에 대한 피드백을 청년들로부터 수렴하며, 모니터링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 그리스의 경우 공정전환 계획에 관한 모니터링 위원회에 청년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유사하게 불가리아, 아일랜드, 헝가리, 네덜란드, 폴란드 등의 경우에도 공정전환 계획 수립에 있어 청년들이 이해관계자 그룹으로 참여하며 의견을 교환하도록 하고 있다.
공정전환 사례의 교훈과 나아갈 방향
공정전환은 탄소중립 경제‧사회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할 영향들을 감안하여 모든 이해관계자를 빠짐없이 포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해외 사례들을 통해 공정전환을 실현하는 것에 있어 몇 가지 교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 의견 교환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대응이라는 이슈는 대게 국가 차원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에 공정전환에 대해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다만, 앞서 살펴본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공정전환을 위해 산업, 노동자, 청년 등의 관련 이해관계자가 이러한 의사결정 절차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관계자 상호 간의 의견 교환, 참여 등이 없는 공정전환 과정이나 활동은 그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공정전환 추진 체계로서 사회적 대화를 위한 새로운 제도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공정전환에 대한 정책 아젠다의 주류화이다. 공공정책을 통한 지원은 공정 전환에 있어 매우 주요한 역할을 하며, 이는 공정전환을 위한 핵심적인 동인이다. 이에 공정전환에 대한 동인을 확보하기 위해 탄소중립‧녹색성장 정책 아젠다의 주요한 요소로 다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공정전환에 대한 관심이 기본적으로 탄소중립 경제 체계로의 변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받을 이해관계자를 포용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후순위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사례와 같이 공정전환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로의 변화를 꾀하는 관점으로 보고 이를 중요한 탄소중립 아젠다로서 공고히 자리매김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공정전환에 대한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관련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유럽의 경우 공정전환기금의 방식으로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에서는 공정 전환을 실천하기 위해 공공, 민간의 투자뿐만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기구로부터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이끌어냈다. EU의 공정전환 메커니즘과 같은 사례에 비추어 자본 확보를 위한 적정한 체계를 확립하는 것과 함께 공정전환에 대한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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