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넷제로프렌즈 제3기 정아민
2025년, 전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의 세 번째 시험대 위에 섰다. 파리협정에 따라 모든 국가는 이전보다 강화된 2035년 탄소 감축 약속(NDC)을 국제 사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C 이내로 묶어두기 위한, 인류에게 남은 몇 안 되는 기회다. 그러나 현재까지 받아 든 성적표는 ‘평균 이하’. 제출 권고 시한이 지났음에도 중국, 인도 등 주요 탄소 배출국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으며 목표를 제출한 국가들마저도 1.5°C 목표를 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세계 10위권의 배출국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과 당장의 경제 현실 사이에서 '책임 있는 선도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소극적 관망자'에 머무를 것인가. 2035 NDC 제출을 앞둔 지금, 세계는 기후 위기 시계를 멈출 수 있을까.
NDC 각국 제출 현황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각국이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할지를 스스로 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의미한다. 온실가스 농도와 지구 온도 상승에 따른 기후 변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를 얼마나 감축할지 5년 단위로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NDC 제도의 시작은 1992년 체결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으로,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이 현재의 구체적인 틀이 됐다.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2°C 이상 오르지 않도록, 나아가 1.5°C 이내로 억제하는 것을 공동의 목표로 삼는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모든 회원국이 스스로 정한 감축 목표, 즉 NDC를 유엔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NDC는 국제사회의 약속 이행 능력을 보여주는 시험대이자, 각국의 기후 대응 수준을 드러내는 일종의 잣대가 되었다.
2025년 10월 7일 현재 NDC를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에 제출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 호주, 일본 등 59개국이다. 영국은 1990년 대비 약 81% 감축을 목표로 내걸었고 스위스는 같은 기준에서 약 65% 감축을 제시했다. 일본은 2013년 대비 약 60%, 캐나다는 2005년 대비 45~50%, 브라질은 2005년 대비 59~67%를 감축하겠다고 했다. 미국 역시 2005년 대비 61~66%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치에도 불구하고 국제 기후분석 기관인 Climate Action Tracker(CAT)는 이들 국가의 목표가 ‘1.5°C 상승 제한 경로’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국가들은 목표 제출은 했지만 제출 기한을 지키지 못했거나 최대 배출국임에도 아직 공식안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제출된 NDC가 많아졌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 내용과 실행의 설계가 아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다수의 국가들이 2035 NDC 제출을 완료했으나 한국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

사진=NABO Focus(출처=관계부처합동)
한국의 현황
NDC 제출 시한은 파리협정 제3차라 할 수 있는 2025년 2월 10일로 정해져있다. 다만 실무상 많은 국가가 품질 보장을 위해 2025년 9월까지 제출 완료를 권고받은 상태지만 한국은 여전히 명확한 목표를 확정하지 못한 채 협의 중이다. 현재 정부는 2018년 대비 48%, 53%, 61%, 65% 감축 등 네 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이해관계자 간 조율을 진행 중이다. 환경부가 발표한 잠정치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6억9천만 톤으로 전년 대비 2%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이 속도라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감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조적 전환이 불가피하지만 전환·산업·수송 등 주요 부문 모두 구조적 한계와 정책적 부담 때문에 “목표는 높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정아민 기자(출처=환경부)
전환 부문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약 36%를 차지하는 핵심 영역이다. 정부는 탈탄소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병행하고 있으나 2035년 NDC 상향 여력이 제한적이다. 올해 2월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태양광 보급 전망을 기존 계획보다 1.9GW 늘리고, 2038년까지는 2.4GW 추가 확대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미 도전적이던 기존 목표를 더 상향한 만큼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산업 부문은 국내 배출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또 다른 핵심축이다. 기존 2030 NDC 목표에서 산업 감축률을 다소 낮췄지만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때문에 2035년 목표 상향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이 높고 감축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성 저하 없이 배출을 줄이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탄소중립 지원정책은 대부분 R&D 중심으로 기술개발의 성패와 적용 시기가 2035 NDC 달성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수송 부문에서는 한때 급증하던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고 인센티브 축소로 무공해차 보급 목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교통정책(대중교통 전환, 운행 제한, 도심 저탄소구역 등)을 통한 추가 감축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실질적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전기차 보급 목표 축소로 발생한 감축 공백을 다른 교통정책으로 메우려면 국민 체감형 교통 전환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비판 속에서도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된다.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산업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개 토론이 이어지고 있고, 기업들의 자발적 감축과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전력 부문에서는 재생에너지 신규 설치 용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의 탄소저감 기술 R&D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됐다. 아직 길은 멀지만 한국의 2035 NDC는 “늦은 출발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는 평가 속에 실행력과 합의 사이의 시험대 위에 서 있다.
이러한 정부 중심의 논의와 별도로, 시민사회와 국내외 기후 싱크탱크들은 2035 NDC 목표 자체가 1.5°C 억제라는 국제적 합의에 비추어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정부 계획이 원전 확대와 탄소 포집·저장(CCUS) 기술의 불확실성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는 장기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가 선진국들에 비해 여전히 소극적이며, 특히 석탄 화력 발전의 조속한 퇴출 로드맵이 부재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들은 단순한 R&D 지원을 넘어 실효성 있는 탄소세 도입 또는 배출권거래제 강화를 통해 산업계의 즉각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강력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2035 NDC는 단순한 탄소 감축 목표가 아니라 앞으로 10년 뒤를 살아갈 미래 세대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마주할 2035년은 기후위기의 결과가 현실이 되는 시점이자, 우리 사회 대전환의 성패가 드러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과제가 아닌 당장의 일상과 맞닿은 생존으로 이어진다. 국제사회의 방향성, 정부의 과감한 정책, 산업계의 책임 있는 변화, 그리고 시민들의 실천이 맞물릴 때 비로소 감축 목표는 실현 가능한 미래로 바뀔 수 있다. 남은 10년, 다음 세대에게 지구를 물려줄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현재의 선택에 달려있다.

위 콘텐츠(글)은 탄녹위 넷제로프렌즈 3기 참여자가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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