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이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목표로 자리 잡은 가운데, 자연에서 해법을 찾는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가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미미크리는 '생명'을 뜻하는 ‘Bios’와 '모방'을 뜻하는 ‘Mimesis’의 합성어로, 자연의 현상을 모방해 환경에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는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그의 스승인 루이스 설리반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격언을 "형태와 기능은 하나이다(Form and Function Are One)"로 확장시킨 개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자연에서 형태와 기능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작동하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뭇잎의 광합성 원리를 모방해 빌딩 외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거나, 선인장의 물 저장 구조를 참고해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친환경 건물도 있다. 또한, 올빼미 날개의 구조를 본떠 소음을 줄이는 건축 자재를 개발하거나, 연잎의 방수 효과를 활용해 빗물에 강한 외장재를 만드는 등의 사례도 있다. 이런 접근 방식은 자연의 지혜를 현대 건축에 통합함으로써, 에너지를 절감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 메신저로 활동하고 있는 넷제로프렌즈 기자로서, 바이오미미크리 디자인을 적용한 우수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짐바브웨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Eastgate Center)
사진 자료=livinspaces
바이오미미크리의 대표적인 건축 사례로 짐바브웨 하라레에 위치한 이스트게이트 센터(Eastgate Centre)를 들 수 있다. 1996년 환경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earce)와 Arup 엔지니어들은 기존의 에너지 소모가 큰 유리 외벽 건축물을 대체할 혁신적인 디자인을 도입했다. 흰개미 집에서 영감을 얻은 이 건물은 자연 환기를 활용하여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이스트게이트 센터는 두 개의 건물이 유리 천장으로 연결되고, 48개의 굴뚝을 통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은 낮 동안의 열 흡수를 최소화하고, 밤에는 축적된 열을 서서히 방출하여 냉난방 에너지를 절감하는 '시간 지연 효과(Time-lag effect)'를 발휘한다. 건물 사이의 빈 공간을 통해 약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며, 에어컨 없이도 실내 온도를 약 24℃로 유지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전력 소비량은 같은 규모의 다른 건물의 10%에 불과하며, 연간 약 350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 이 설계의 핵심은 흰개미 집의 '스택 효과(Stack Effect)'이다. 흰개미 집은 바깥 기온이 35~45℃에 달하는 여름철에도 내부 온도를 30℃ 정도로 유지한다. 이는 공기구멍을 여닫아 공기 흐름을 조절하고, 미세한 구멍들을 통해 외부와 공기를 순환시켜 실내의 이산화탄소와 같은 대사 부산물을 외부로 배출하는 구조 덕분이다. 이스트게이트 센터는 이러한 자연의 환기 원리를 활용해 에너지 효율성과 쾌적한 실내 환경을 동시에 달성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자료=Never Enough Architecture
파리 아랍 세계 연구소(Institute of the Arab World)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아랍 문화원 역시 바이오미미크리의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 건물의 외벽에는 아랍 전통 건축의 '마슈라비야(Mashrabiya)' 패턴을 모방한 자동 셔터가 설치되어 있다. 이 셔터는 햇빛의 강도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혀, 자연 채광을 최적화하면서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여름철에는 햇빛을 차단해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하고, 겨울철에는 셔터가 닫혀 내부 온기를 보존하여 난방 비용을 절감한다. 이러한 자연 환기와 채광 시스템 덕분에 아랍 문화원은 외부 에너지 의존도를 크게 줄였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자연의 원리를 건축에 적용함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속 가능한 환경을 구현하고 있다.
사진 자료=Architecturestudio
바이오미미크리를 활용한 건축물은 단순한 디자인 혁신을 넘어, 건축물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환경적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자연의 원리와 구조를 모방한 건축 자재와 디자인은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자원의 낭비를 최소화하며, 전체적인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이오미미크리의 지속 가능한 설계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우리는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를 통한 건축 디자인의 발전은 기술적 진보를 넘어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며, 미래의 건축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넷제로프렌즈 청년기자 정혜윤
원문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nyeyunni_/223601776571
본 글은 넷제로프렌즈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탄녹위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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